예전 내가 나이 서른 칠팔 살 때니까, 1967년 무렵을 돌이켜 봅니다. 그 때는 우리 고을 여러 골골마다 매꾼이 많았습니다. 매꾼이란 매를 부리는 사람을 말하지요. 이름만 알 뿐 자주 뵙지 못한 분 중에는 심경범 어른도 계셨는데, 아명이 복동이었습니다. 노천리 원로마을에 사시다가 73년에 작고하셨지요. 그 어른에게서 매 부리기를 배운 분으로 운교리 원운마을 전영태 어른과 평장리 가전마을에 김용기 어른들이 계셨습니다. 전영태 어른은 백운면장을 지낸 분으로 학식이 높았고, 매도 잘 부리는 한량이셨습니다. 또 연세가 비슷한 김용기 어른은 그저 시골에서 살아오신 농투성이이신데, 내게는 친절한 이웃 마을 아저씨이셨습니다.
나는 용기 어른을 모셔다 술밥 대접도 하고 자주 산을 따라다니며 매 부리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삼뜯기’라는 말이 있는데, 매는 꿩을 뜯고, 가시덤불은 매꾼 옷을 뜯고, 마누라는 땔감이 없어 울타리를 뜯는다고, 저는 매 부리는 재미에 빠져 청춘을 다 보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세태가 바뀌니 매 부리는 일도 잊어가고, 마지막 매꾼 전영태 면장님과 김용기 어른 들마저도 세상을 떠나고 이제 어쩌다 세상에 ‘자연산’ 매꾼은 홀로 덜렁 남았습니다.
다행히 우리 고을 친구들은 아직 예전 꿩털이 하던 추억이 있고, 지금도 사냥을 간다 하면 바쁜 손길을 멈추고 찾아와 주니 꿩 한 마리 잡아 국이라도 끓여 더러 나눠 먹습니다. 그간에 한겨레신문에 있던 최성민 기자가 우리 동네 매사냥 풍속을 발견하고 세상에 알려 회생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90년엔가 한겨레신문에 ‘가볼 만한 곳’을 연재하면서 우리 백운면 매사냥을 소개한 것입니다.
그 뒤 92년에 ‘그곳에 다녀오면 살 맛이 난다’는 책을 내고 내게도 한 권을 증정해 주더군요. 시골 범부가 이름이 책에 올라오니 기분이 참 특별하더군요.지금도 소중히 간수하며 읽고 또 읽습니다.
이 덕분에 매사냥 풍속이 널리 알려지고 전영태 어른을 기능보유자로 해서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었습니다. 영태 어른마저 세상을 떠나고 2007년에 제2대 기능보유자로 내가 그 자리를 물려받아 매와의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이래 매사냥에 재미를 붙인 사람들이 모임을 만들어 원근 각지에서 찾아오는 회원들이 있으니 명맥을 잇는 데 지장이 없게 되었습니다.
팔뚝을 떠나간 매가 더러 봉솟굼을 하거나 북나들이를 하거나 공중재비라도 벌일라치면 참 오금이 저리게 재미있는 광경이지요. 첨단 문명시대에 잊혀져 간 우리 옛 풍속을 되살린다는 뜻도 있고, 재미가 그지없는 매사냥을 같이 즐깁시다.